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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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통해서 저는 제 자신을 인생에서 목표한 모습과 동일시 할때, 다시말해 저를 제가 소망하는 것을 실현한 모습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리스도가 제 안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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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내 믿음의 산물이라는 사실, 내가 이 거미줄 같이 얽히고 섥힌 환경의 중심이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변하면 외부 세계도 변한다는 사실, 이것들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의 의식 상태가 달라지면 외부 세계도 그 변화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state)와 동일시 되었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은, 그 사태와 분리되면 사라지고 맙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태란 우리가 믿고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모든것을 뜻합니다. 마음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도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실현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그 상태와 동일시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 집니다. 상상력과 상태가 결합될 때 눈에 보이는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세상은 상상력과 결합된 상태가 현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객관적인 세상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이 상태 입니다.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착한 사람, 도둑은 각자의 상상력이 머무른 상태 때문에 그런 모습이 된 것이고, 그들은 또 그 각각의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서로 다른 상태가 그들의 서로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똑같은 하나의 세상안에서 우리는 각자가 만들어 낸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의 외부적인 행동과 활동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그의 내면의 마음상태가 만들어낸 결과 입니다. 내면의 상태가 변화되지 않는한 외적인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공은 성공한 사람들의 외적인 행동을 모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내면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상태로부터 분리된다면, 또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상태와 함께 나타났던 상황과 환경은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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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네가 막연히 바베이도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이미 그곳에 있다고 상상하고, 그러한 의식 상태에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곳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네.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을 걱정해서는 결코 안되네. 왜냐하면 상상에 푹 빠져서 이미 바베이도스에 가 있다고 느끼는 의식 상태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최선의 방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이지"
인류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자신을 맡기면서, 다시 말해 자신의 상상력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하나로 결합시켜가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상상력이 결합한 상태를 결과로서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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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 있다고 상상해보게. 바베이도스에서 바깥풍경을 바라본다고 상상하며 잠에 빠져들게나."
우리는 세상을 우리 자신과 연관지어서 묘사합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바라는 상태와 우리를 연결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력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줄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저 결말을 생각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상상을 통해 이미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마음속에서 경험한 세상은 객관적인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압둘라는 이것을 그저 공상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그의 비결이었습니다. 어떤 상태에 대해 생각만할 때 그 상태는 단순히 가능성으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놀랍게도 그것은 현실이 됩니다.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감각의 한계와 현재의 상태가 머물렀던 수준에서 벗어나 이미 제가 바베이도스에 있고 그곳에서 주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압둘라는 잠에 빠지는 순간,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세기의 예언자들 역시, 꿈꾸는 시간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때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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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내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나의 메모>
계좌의 숫자만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이 들어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상태를, 상상으로 깊게 느끼고 그 상태에 머무르고 또 머무르는 것. 깊게 그 상상의 상태에 잠겨버리는 것.
이 부분은 훈련을 해야함. 한번에 이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음. 조금씩 시험을 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음.
내면의 목소리/끊임없이 대화하는 목소리를 잠잠하게 하는 연습도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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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안에서 그리스도의 영혼을 창조하는 일이고, 이는 계속해서 죄를 용서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자신의 이상과 동일시함을 말합니다. 자신을 인생의 목적과 동일시 할 때 만이, 즉 자신이 이미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모습으로 여길 때 만이 이제껏 그러지 못한 잘못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외의 노력은 헛됩니다. 상상력을 이용하여 가고자하는 장소가 어디이든, 이루고자 하는 상태가 무엇이든, 우리의 상상력이 그곳에 머물고 그 상태가 된다면 우리의 육체도 중력에 이끌리듯, 그곳의 그 모습이 될 것입니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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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의식적으로 환경을 창조하려는 사람이라면 상상 속에서 미래를 현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말을 생각하는 대신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함으로써 비전을 실재(Being)로 바꾸어야 합니다. 상상을 통해서 어떤 상태에 집중하고 그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소망이 이루어진 세상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인 삶입니다.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모른다는 것은 속박을 뜻합니다. 우리가 매여 있는 모든 속박의 밑바탕에는 그 무지가 있습니다. 감각이 보여주는 증거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것은 내적자아(Inner Self)의 힘을 과소평가 하는 것입니다. 일단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창조의 원리로 받아들이면 단순히 결말을 생각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목표들을 소망이 이루어진 모습으로 만드십시오.
일생은 단지 갈망을 채워주는 과정일 뿐이며,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끝없이 많은 의식의 상태들은 그 갈망을 채우는 수단입니다. 그 상태들 각각 모두가 세워진 원리의 기저에는 자기만족에 대한 욕망을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의 세계까지 고양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욕망은 정신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엔진입니다. 그것은 축복입니다. 욕망은 그것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만족시킬 수 있는 의식의 상태를 가진,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목적이 없는 삶은 우리를 방황하게 만듭니다. "내게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복음서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많이 던진 질문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을 뚜렷하게 만들 때, 여러분은 그것을 원해야만 합니다.
"하느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편 42:1
이런 삶에 대한 열벙적인 방향성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합니다.
소망과 만족, 즉 결말을 생각하는 것과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사이에 다리를 잇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말을 생각하는 대신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상상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이성은 본성적으로 감각이 보여주는 증거에 제약을 받는 반면, 상상력에는 그러한 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상상의 활동으로 충족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감각이 한계지은 것과 이성이 속박한 것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멈추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것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방법을 창조해내고 점차 한계에서 벗어나 주의 거대한 저택으로 들어갑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입니다. 그는 세상이란 것이 자신 내면의 활동이 외부로 나타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생각이 시작되는 결말을 결정하고 통제하려고 애를 씁니다. 상상 속에서 그는 이미 결말에 머물기 때문에 실제로도 그곳에 머물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는 소망이 이루어진 느낌을 온전히 믿고 그 상태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그러면 행운의 기술(art of fortune)이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처럼 상상속에서 연못이 흔들릴때 뛰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그에게는 모든 소망이 익은 곡식임을 잘 알기에 이성적인 가능성을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꾸준한 상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단단한 현실로 굳어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결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오직 진실된 삶이고, 그렇게 생까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이 아니라 충만한 삶 그자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에게 주어진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삶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의식의 상태에서 존재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원하는 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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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겉사람이 이 현실 세계에서 실재인 것처럼, 한 인간의 속사람 역시도 마음의 세계안에서 실재입니다. 하지만 속사람은 현실의 보다 근원적인 부분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사람을 다루면서 그것을 조절해야만 합니다. 속사람이 하는 생각과 느낌의 내부 세계는 구조도 갖춰져 있고 좀 더 고차원의 공간에 속합니다.
두가지 종류의 행동이 있는데, 하나는 속사람의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겉사람의 행동입니다. 속사람의 행동은 원인이 되고, 겉사람의 행동은 그 원인에 의해 강제됩니다. 속사람의 행동은 자신과 연결된 겉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겉사람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과 비슷하게 만듭니다. 속사람의 행동은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힘입니다. 겉사람의 움직임은 속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생긴 충동에 종속적입니다.
소망을 이루었을 때 겉사람이 취하게 될 행동이 속사람의 행동과 일치할 때 소망은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드라마를 머릿속에서 구상한 후에, 상상속에서 그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외적인 육체의 자아는 움직이지 못하게 하십시오. 마치 낮잠을 자는 것 같이 느끼십시오. 그리고 미리 구상해놓은 행동을 상상속에서 그대로 실행에 옮기십시오.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그 행동을 아주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잠에 들면서 의식적으로 자신이 그 장면안에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얼마나 오래 자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짦은 낮잠이라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행동을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잠에들면 상상이 사실로 굳어집니다.
처음엔 생각들이 마치 양치기가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양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절대 좌절하지 마십시오. 집중력이 자꾸 흐트러지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예정된 코스로 돌아오십시오. 그러다 보면 생각들도 지쳐서 나중엔 정해진 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내면의 여행일지라도 절대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내면의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 길을 떠나기 전에 마음으로 계획했던 것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보았고 받아들였던 여러분이 선망하던 것을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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